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장경국(장개석의 아들)의 통치기에 대만의 고립은 더욱 심화되었고 내부의 민주화 요구도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그는 신진파를 등용시키고, 종신제인 '만년국회'를 개선하는 등의 조처를 취했으나 근본적으로는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일당독재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례로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대만대학의 한 교수가 대학 내 정원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음에도 아무런 수사 발표 없이 종결되었다. 본섬인들은 '2·28사건'의 상처와 분노를 안고 살았고, 대륙을 수복하여 곧 돌아갈 것을 믿고 들어온 군인들의 불만도 커졌다.
1979년 대만 남서부에 있는 제2의 도시 고웅(가오슝)에서 《미려도(메이리다오)》라는 잡지가 창간되어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미려도'는 대만의 별칭으로, '대만독립과 민주화를 위한 잡지'라는 부제가 달렸으며 뒷날 민주진보당(민진당)의 주역들이 창간하였다. 1979년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미려도/美麗道》는 '대만인권위원회'를 발족하였다. 정부가 불허한 이 행사에는 3만 명이 넘이 사건으로 150명 이상이 체포되어 군사법정 하에서 국가반란죄 등으로 중형을 선고 받았다. 이를 '미려도 사건'이라고 한다. 대만 민주화 운동의 전기를 이룬 사건이다(1987년 7월 14일 계엄령 해제 선포)
'2014 TaiWa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리산으로 고고고~~~ 嘉義高速鉄道-阿里山 (0) | 2014.09.06 |
---|---|
타이완 고속철 탑승 (0) | 2014.09.06 |
가오슝 고속철 쭤잉(左營)역의 이모저모 (0) | 2014.09.06 |
가오슝 I-pass / 이지카드 (0) | 2014.09.06 |
高雄秝芯旅店 - 레전드 호텔 가오슝을 떠나며~~ (0) | 2014.09.06 |